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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 ?!

Posted at 2010/08/21 23:23// Posted in RETORIC Editorial

하숙생

 



       
        1980
년대 중반 국민학교 3학년 다닐 무렵 여름방학 추리 소설을 만들다 그만둔 기억이 있다. 절벽근처에 있는 고 저택에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갖가지 안전장치며, 이를 통과 할 수 있는 기괴한 열쇠며.. 지금도 약간의 내용이 기억이 난다. 어머니랑 동생에게 수줍어하며 보여드린 기억이 있고, 정말 네가 썼냐는 말에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 몇 번인가 20대 초반까지 시를 썼으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전화기 너머로 읽어 주곤 그 반응에 기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시 중에선 ‘개구리’란 시가 어렴풋 기억이 난다.

 

버스를 타면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칠까봐 맨 앞자리에서 끊임없이 기사아저씨와 승강장을 쳐다보던 국민학교 2학년 방학. 어쩐지 어머니 손에 끌려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에서 열린 문화 강좌에 가게 되었고 5일 정도를 다녔던 것 같다. 그때 강사가 오덕이란 선생님 이셨는데 훗날 그분에 유명한 분이란 걸 알게 되었다. 5일간의 시간동안 기억하는 한 가지가, 언젠가 글짓기 대회 심사를 하신 경험을 그 분이 말한 내용이다. 글짓기 대회 심사를 하는데 어떤 아이가 ‘우리학교 고물학교 축구도 야구도 못하는 고물학교 아이들은 언제나 교실 안에 있다네’란 시를 썼는데 가장 좋은 점수를 주셨다는 거다. 다른 사람들의 반대로 그 아이가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당신은 가장 훌륭한 글이라 생각한다고 말하셨다. 그 이유는 가장 솔직한 글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도 무슨 말은 해야 할지 모르거나,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면 ‘솔직’이란 단어를 생각한다. 피해갈 수 없는 답일 수 있지 않을까?

 

뭔가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기억의 기록일 때도 있고, 그 기억들의 다른 형태로의 기록이고자 할 때도 있다. 개인적인 기억의 기록은 상관없겠지만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는 다른 형태로의 기록은 고민이 됐다. ? 써야 하는지 어느 정도 스스로에게 ‘답’이란 것이 필요했다. 나란 놈은 항상 어느 정도의 답을 필요로 한다. 아직도 혹은 영원히 왜 사는지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하려면 답이 필요했다. 이것은 왜 해야 하며, 저것은 또 왜 해야 하며.. 쓴다는 행위는 심각하게 집중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머리나 마음 한켠에 항상 둥둥 떠다니는 질문이었다. 비교적 자주 생각한다는 건 어떻게는 ‘쓰고’싶다는 욕심이 있어서였을까? 그렇다면 그 욕심은 어디서 기인이 된 것일까. 20년도 더 된 누군가의 칭찬 혹은 기쁨? 혹시 본능 때문인가라는 생각도 해봤다.

 

한 여인을 만나서 결혼은 했다. 그 여인의 소원이었던 고양이 사육을 하게 되었다. 항상 지나다니던 나무의 푸르름이 계절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무심함에 부끄러웠고 그 놀라운 발견에 눈물 나게 기뻤다. 언제나 스쳐 보내던 고양이란 생물을 옆에서 지켜보니 여간 신기 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흐를 것이고, 고양이는 성장할 것이고 내 기억은 흐려져 갈 것이고.. 등등의 생각으로 저 녀석을 보면서 느낀 느낌을 기록해 두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던 아내가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자고 했다. 그 고양이 일기를 본 자기 친구들도 그러길 바란다며.. 그 무렵 둥둥 떠다니던 질문이 또 선명해 졌다. 왜 써야할까? 쓴 다 쳐도 굳이 책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자갈밭에 돌을 던지는 것은 아닌가? 그 생각이 정리되기 전 누군가의 따뜻한 권유가 또 있었다. 오랜 친구의 끄덕임도 있었고..


 

사람들이 ‘글’을 읽는 목적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능서적을 말고 대부분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얻는 것은 위로와 위안이다. 그렇구나 이런 사람 저기 또 있었구나. 그렇구나 저 사람도 그렇게 견디며 사는구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렇게 견디는 구나.. ‘국부론’을 쓴 애덤스미스의 또 다른 책 중 ‘도덕감정론’이란 책이 있다. 대학 다닐 때 저 책을 왜 꺼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본론만큼 두꺼운 책에 감정에 대한 많은 이야기 들이 있었다. 그 중 기억나는 한 문장이 “세심하고, 남을 존중할 줄 알고 배려하는 사람들, 마땅히 귀하게 존중을 받아야 할 그런 사람들이 사실은 늘 상처받는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심히들 잘 살아가는데..” 기억에 의존해 정확하진 않은 것 같지만 대략 저런 내용이었다. 목동에 있는 양천 도서관 3열람실 가림막이 20센티도 되지 않는 얕은 책상 앞에 앉아 눈물이 주룩 흘렀다. 그렇구나, 몇 백 년 전에도 몇 십 년 전에도 몇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그렇게 견디면서들 사는구나..

 

나에겐 ‘답’이란 것들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여러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든 의견을 싣거나, 보탬이 되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어떻게든 살려면, 그런 순간이 매번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때 내게 필요한 ‘답’은 무엇인가를 찾으려 해 봤다. 견고하게 정리하진 못했지만 그 과정의 내 ‘가안’은 ‘소수를 외면하지 않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의 편’에 선다면 비록 그 판단이 잘못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훗날 후회는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자력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절대 약자들의 편. 가령 장애인 같은.. 그 편에 서서 산다면 한 번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내용으로는 리영희 선생 같은 글, 감성적으론 윤대녕 작가 같은 글. 언제 읽어도, 혹은 읽지않아도 좋은 하루키 같은 글이라면 좋겠다. 그런 글 이라면 자갈밭에 돌은 안 되지 않을까. 혹은 내가 느꼈던 그 위안을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느낀다면 충분히 아주 충분히 무엇이든 써도 되지 않을까..

 

몇 년 전 내가 사는 동네에 어떤 작가가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왠지 훌륭한 동네에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평생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며 살겠지만 큰 돈 들이지 않고 애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정녕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길 위에서 산다. 길 위를 떠돌아다니고, 길 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아무리 여러 상황을 고려해 봐도 내가 하고 있는 일만큼 아주 다양한 사람과, 특별하고 일반적인 상황들을 겪을 수 있는 직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것도 비교적 철저한 관찰자로서..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잊혀 지지 않는 목동 4거리 공중전화 박스 옆의 아저씨의 눈빛, 십년이 지나도록 잊혀 지지 않는 자기 소중한 것을 말하던 횡단보도 위 친구의 눈빛, 몇 년지 지나도록 잊혀 지지 않는 광통교 위에서 구루마에 아이들을 올려놓고 끌어주던 할머니의 주름. 이런 이상한 기억력은 어느 정도 좋은 자료들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어째 비장한 출사표 같은 글이 되어 버렸다... 야호~ 이럇~......

 

이 글은 하숙생이 레토릭에 기고한 에디토리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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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4 18:21 [Edit/Del] [Reply]
    들어올 때마다 저 사진 속의 만년필이 어디 꺼 일까.. 유심히 닙을 살펴보지만, 제 능력으로는 판별 불가로군요...ㅠ_ㅠ
    • 2011/03/15 08:27 [Edit/Del]
      펠리칸이에요.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둥근 로고 안에 아래쪽 반원과 위쪽에 물음표 처럼 생긴 로고. 그리고 펜촉 끝부분으로 적혀있는 글자.펠리칸이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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